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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기반 맞춤형 영양학

유전자 분석과 정신 건강: 영양과 감정의 연결고리

정신 건강과 유전자의 관계, 어디까지 밝혀졌나

정신 건강을 설명하는 데 있어 오랜 시간 심리적 요인이 핵심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생물학적, 특히 유전학적 요인에 주목하는 연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 뇌는 신체 중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기관이며, 세포 내 신경전달물질의 균형과 흐름에 따라 우리의 감정, 스트레스 반응, 수면, 동기부여 수준이 결정된다. 이런 뇌 내 환경을 조절하는 물질들은 결국 영양소의 대사 과정과 유전자의 작용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뉴트리제노믹스(nutrigenomics)’라는 학문이 등장하면서, 영양소가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주고, 반대로 유전자 변이가 영양소 대사 효율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 이는 정신 건강의 새로운 키워드를 제공한다. 단지 ‘마음을 다스린다’는 모호한 방식이 아닌, 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기반으로 필요한 영양을 보충하고, 감정 조절을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감정과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주요 유전자

정신적 안정감은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에 따라 유지된다. 이러한 물질의 합성, 전달, 재흡수, 분해에 관여하는 대표적인 유전자들이 있다.

  • SLC6A4 유전자는 세로토닌 수송체를 조절하며, ‘단일염기다형성(SNP)’으로 알려진 특정 변이가 있을 경우, 스트레스에 과민하게 반응하거나 불안감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 COMT (Catechol-O-Methyltransferase) 유전자는 도파민과 같은 카테콜아민의 분해를 담당한다. **저활성형(COMT-Met)**은 도파민이 뇌에 오래 머물러 감정이 쉽게 과도해지는 경향이 있고, **과활성형(COMT-Val)**은 도파민이 너무 빨리 분해되어 무기력감, 우울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 **MAOA (Monoamine oxidase A)**는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의 대사에 관여하며, 이 유전자의 변이가 충동 조절 장애, 공격성 증가와 연관된 사례도 있다.
  • BDNF (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유전자는 뇌 신경세포의 성장, 회복, 재생에 필수적이며, 이 유전자가 비정상적으로 발현되면 우울 증상이나 인지 저하가 나타날 수 있다.

이처럼 유전자에 따라 같은 감정 자극에도 서로 다른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신의 기질과 취약점을 파악하는 것은 감정 조절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정신 건강에 관여하는 영양소와 유전자의 상호작용

신경전달물질을 생성하기 위해선 다양한 영양소가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동일한 효율로 이 영양소를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 변이로 인해 특정 비타민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 영양 결핍 상태가 생기고 이는 곧 정신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MTHFR(Methylenetetrahydrofolate Reductase) 유전자다. 이 유전자는 엽산을 활성형인 5-MTHF로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C677T나 A1298C와 같은 변이가 있으면 이 기능이 떨어져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전구체 생산이 줄어들게 된다. 이때 일반 엽산을 섭취해도 효과가 없고, 반드시 활성형 엽산(5-MTHF)을 보충해야 뇌에서 필요한 화학물질 생산이 가능하다.

또한 비타민 B6, B12(메틸코발라민 형태), 마그네슘, 아연 등은 신경 안정, 수면 조절, 스트레스 대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마그네슘은 COMT 과활성형인 사람에게 도파민 분해 속도를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처럼 유전자에 따라 섭취해야 할 영양소의 종류, 용량, 형태까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현대 영양 정신의학의 핵심이다.

유전자 분석과 정신 건강: 영양과 감정의 연결고리

실제 임상사례: 유전자 맞춤 영양으로 변화된 삶

서울의 한 정신과 클리닉에서는 유전자 분석과 영양 처방을 함께 제공하는 통합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환자들이 기존 약물 치료만으로는 부족했던 정서적 안정을 보완받고 있다.

  • 사례 1: 35세 여성 A씨는 불면과 공황 증상으로 수년간 심리 상담과 약물에 의존했으나 개선되지 않았다. 유전자 검사 결과 COMT 저활성형과 MTHFR 이중 변이가 확인되었고, 고흡수형 마그네슘, 5-MTHF, 메틸코발라민, 아슈와간다, 테아닌이 포함된 맞춤 영양제를 12주간 복용한 결과, 자율신경 균형 수치가 개선되고 수면 패턴이 정상화되었다.
  • 사례 2: 42세 남성 B씨는 만성 피로, 의욕 저하, 직무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COMT 과활성형으로 진단되었고, 코엔자임Q10, 비타민B군 복합체, 오메가3를 포함한 대사 보충요법을 통해 에너지 회복과 집중력 개선을 체감했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사례는 단순한 ‘기분 개선’을 넘어서 정신 건강에 있어 유전자 기반 접근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유전자 기반 정신 건강 관리의 가능성과 한계

유전자 분석 기반의 정신 건강 관리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이는 전통적인 정신의학의 한계를 넘어 정확하고 개인화된 치료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의 실제 적용 사례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 첫째, 유전자는 질환의 '가능성'만 말해줄 뿐, 실제 발현 여부는 식습관, 스트레스, 수면 등 다양한 생활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 둘째, 유전자 검사 서비스(DTC)는 국가마다 해석 가능 범위에 제한이 있으며, 무분별한 해석은 오히려 오용을 불러올 수 있다.
  • 셋째, 비용과 정보 격차로 인해 접근성이 제한되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유전자 분석 결과를 단순히 ‘진단’이 아닌 ‘관리 전략 수립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그에 맞는 생활습관 조정과 전문가 상담을 병행해야 유의미한 변화가 가능하다.

 

유전자와 영양은 이제 더 이상 분리된 개념이 아니다. 감정, 행동, 집중력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의 흐름조차 세포 단위에서의 생화학적 균형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기분도 과학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