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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기반 맞춤형 영양학

잠 못 이루는 이유, 혹시 당신의 유전자 때문일까?

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 수면의 본질부터 이해하자

수면은 단지 하루의 피로를 회복하는 시간이 아니다. 뇌과학과 생리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수면은 신경계 재정비, 면역체계 재구성, 호르몬 분비 조율, 감정 안정, 기억 정리까지 수많은 기능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복합적 생리 현상이다.

단 한 번의 깊은 잠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해소되거나, 전날 학습한 정보가 정리되어 기억으로 정착되는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수면은 단순히 **‘깨어 있음의 반대’**가 아니라, 깨어 있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다.

하지만 이 중요한 수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문제는 단순한 졸림이나 피로감을 넘어서 인지기능 저하, 감정 조절의 어려움, 면역력 저하, 체중 증가, 심지어 만성 질환 발생까지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만성 수면 부족은 고혈압, 당뇨병, 심혈관 질환과의 연관성이 여러 연구에서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우울증과 불안장애의 주요한 기저 요인 중 하나로도 작용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어떤 사람은 쉽게 잠들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한 걸까? 단순히 생활 습관의 차이일까? 아니면 유전적인 원인이 숨어 있는 걸까?

수면을 조절하는 내부 시계 – 생체리듬과 유전자

사람은 **24시간 주기의 생체리듬(Circadian Rhythm)**을 가지고 있다. 이 생체시계는 외부의 빛과 온도, 식사 시간 등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지만, 그 근본적인 주기는 유전자에 의해 조절된다. 우리 뇌 속의 시교차상핵(SCN)은 일종의 마스터 시계로, 시계 유전자(clock gene)들의 작동에 따라 체온, 호르몬 분비, 각성도, 졸림 등을 조절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유전자는 **PER3(Period Circadian Regulator 3)**이다. PER3 유전자의 다형성에 따라 사람은 다음과 같은 성향을 보인다.

  • PER3 5/5형 (장형): 이른 아침에 활발하고, 밤에는 졸림이 빠르게 찾아온다. ‘아침형 인간’의 전형이다.
  • PER3 4/4형 (단형): 저녁에 활동량이 많고, 아침에 일어나기 어렵다. ‘저녁형 인간’으로 불리며, 현대인의 야행성 패턴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유전형은 단순한 생활습관이 아니라, 유전적으로 타고난 생체리듬의 차이임을 보여준다. PER 유전자 외에도 CLOCK, CRY, BMAL1, DEC2와 같은 다양한 시계 유전자들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며, 이들의 조화가 무너질 경우 불면, 낮잠 과다, 주야 리듬 혼란, 사회적 시차 같은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다.

즉, 어떤 사람은 ‘야근’에 강하고, 어떤 사람은 ‘새벽형 루틴’에 적합한 것은 그냥 기분이나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뇌 속 유전자의 시간표가 다르게 짜여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불면증의 유전적 민감도 – COMT, ADA, BDNF

불면증은 단순히 잠을 못 자는 상태가 아니다. 쉽게 잠들지 못하거나, 자주 깨거나, 너무 이른 시각에 잠에서 깨어나는 것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런 불면 성향 역시 유전자와 무관하지 않다.

  • COMT(Catechol-O-Methyltransferase) 유전자는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분해하는 효소를 생성한다.
    • 저활성형 COMT을 가진 사람은 도파민이 뇌에 오래 남아 흥분 상태가 지속되기 쉬우며, 이는 수면으로 전환이 잘 안 되고,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깨는 성향과 연결된다.
  • ADA(Adenosine Deaminase) 유전자는 졸음을 유도하는 아데노신을 분해한다.
    • ADA 유전자가 과활성형인 경우, 아데노신이 빨리 제거되어 졸림이 잘 오지 않고, 수면 압력이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 BDNF(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유전자는 신경세포의 성장과 회복에 관여하며,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성과 감정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 특정 BDNF 유전형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수면 방해 요소로 작용하며, 특히 스트레스 불면증과 관련이 깊다.

이처럼 신경계의 작동을 조절하는 유전자들 간의 미묘한 차이가, 어떤 사람에게는 ‘침대에 눕자마자 숙면’이 가능하게 하고, 어떤 사람은 ‘눈을 감으면 오히려 생각이 많아지고 뒤척이게 만드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카페인, 술, 야식 – 똑같이 먹어도 다르게 반응하는 이유

일상에서 수면을 방해하는 가장 흔한 원인은 카페인과 알코올이다. 많은 사람들이 “커피 마셔도 잘 자요”, “소주 한잔 하면 잠이 솔솔 와요”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마다 반응이 크게 다르다. 그 이유 역시 유전자에서 찾을 수 있다.

  • CYP1A2 유전자는 간에서 카페인을 분해하는 효소를 조절한다.
    • 빠른 대사형은 카페인을 금방 분해하므로 커피를 마셔도 큰 영향이 없지만,
    • 느린 대사형은 커피 한 잔에도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자도 자도 피곤한 상태가 지속된다.
  • ALDH2 유전자는 알코올 대사에 관여하며,
    • 비활성형을 가진 사람은 술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 술을 수면제로 사용하는 습관이 있을 경우, REM 수면 억제, 이른 각성, 숙면 감소와 같은 문제가 나타난다.

같은 음식, 같은 생활을 해도 어떤 사람은 괜찮고, 어떤 사람은 수면의 질이 확연히 나빠지는 이유는 바로 우리 몸의 대사 시스템이 유전자적으로 다르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의 수면, 유전자에 따라 다르게 영향을 받을까?

수면에 대한 유전적 민감도는 성별에 따라 표현 양상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같은 유전자형이라 하더라도, 호르몬 환경, 뇌 신경전달물질 분포, 대사 특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불면증 진단을 받을 확률이 1.4~2배 높고, 수면의 질에도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에스트로겐은 수면의 질을 높이는 작용을 하지만, 프로게스테론은 수면을 유도하는 작용이 있어, 여성은 생리 주기에 따라 수면 패턴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폐경기 전후에는 호르몬 변화로 인해 불면, 수면 중 열감, 야간 각성 등이 심해지며, 유전적으로 수면 민감도를 가진 경우 증상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

또한 BDNF 유전자나 COMT 유전자의 특정 변이는 여성에게서 더 강한 감정 반응이나 스트레스 과민 반응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수면에 미치는 영향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

즉, 유전자형이 같다고 해도 성별에 따라 수면 문제의 강도나 유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수면 관련 유전자 분석 결과를 해석할 때에는 성별을 고려한 맞춤 해석이 중요하다.

잠 못 이루는 이유, 혹시 당신의 유전자 때문일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 유전자에 따른 수면 전략

그렇다면 이런 유전자적 요인을 알고 나면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수면 환경과 루틴을 설정’**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전략이 있다.

  • PER3 장형(아침형 인간): 아침 운동, 오전 집중업무 배치, 일찍 취침.
  • PER3 단형(저녁형 인간): 출근 시간을 조정하거나, 빛 노출 시간을 인위적으로 앞당기는 방식으로 생체시계 동기화가 필요하다.
  • COMT 저활성형: 밤늦게까지 집중 업무를 피하고, 자기 전 명상, 마그네슘 섭취 등으로 흥분 상태 진정을 유도해야 한다.
  • CYP1A2 느린형: 카페인은 최소 오후 2시 이후 금지, 디카페인도 주의.
  • BDNF 민감형: 스트레스 해소가 핵심. 규칙적인 운동과 낮 시간 햇볕 노출이 큰 도움이 된다.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그 사람만의 유전적 생리 리듬 위에 형성되는 정밀한 생화학적 프로세스다. 이제는 그 흐름을 이해하고 조절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잠 못 이루는 밤, 나를 탓하기 전에 유전자를 이해하자

불면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단지 ‘스트레스 때문’이나 ‘내 의지의 부족’이 아니라, 타고난 유전적 설계의 차이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불면을 더 이상 감정의 문제로 여기지 않고,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생리현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유전자 기반 수면 전략이 제공하는 가장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