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데도 계속 먹는 나, 이상한 걸까?"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분명 충분히 먹었는데도 젓가락이 계속 가고, 어느새 배가 불러 터질 듯한 상태가 된다. 이를 단순한 ‘식욕 조절 실패’로만 보는 시각이 있지만, 최근에는 유전적인 요인에 주목하는 연구들이 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과식을 유발하는 유전자', 혹은 배부름 신호를 무디게 만드는 유전자에 대한 연구다.
식욕은 단순히 의지나 습관의 문제가 아니다. **렙틴(leptin)**이라는 호르몬이 지방세포에서 분비되어 뇌의 시상하부에 작용하면서 ‘이제 그만 먹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이 렙틴이 제 기능을 못 하거나, 뇌가 이 신호에 반응하지 않도록 하는 유전적 변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유전자가 바로 **LEPR 유전자(Leptin Receptor Gene)**로, 이 유전자에 문제가 생기면 렙틴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포만감을 느끼기 어렵다.
“왜 나만 자꾸 배고플까?” – MC4R 유전자 변이
MC4R(Melanocortin 4 Receptor) 유전자는 체중 조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유전자 중 하나로, 뇌에서 에너지 균형과 식욕 조절을 담당하는 시상하부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음식을 섭취하면 체내의 렙틴이나 인슐린 같은 호르몬이 분비되어 시상하부에 신호를 보내는데, MC4R 유전자는 이 신호를 받아 식욕을 억제하고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기전을 유도한다.
하지만 MC4R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경우, 이 신호전달 경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음식을 충분히 섭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배부르다’는 신호가 뇌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과식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여러 유전체 연구에서는, MC4R 유전자 변이를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비만에 걸릴 확률이 2~3배 높다는 결과도 보고되었다.
특히 이 유전자의 영향은 어린 시절부터 강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부터 유독 많이 먹고, 체중이 또래보다 급격히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 아이들의 경우, MC4R 유전자 변이를 의심해볼 수 있다. 이들은 일반적인 식욕 억제 방식—예를 들어 식사량 조절이나 금식—이 잘 통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와 식욕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단순한 식사 제한보다 MC4R 유전자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식사 전에 포만감을 줄 수 있는 식이섬유나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먼저 섭취하고, 식후에는 혈당이 급격히 상승하지 않도록 저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을 구성하는 방식이 추천된다. 또한, 운동을 통해 MC4R 경로를 자극하고 활성화시키는 전략도 도움이 된다.
"식사 후에도 만족스럽지 않아요" – 식욕 조절 호르몬과 유전자
식욕 조절은 호르몬과 뇌 신호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정교한 시스템이다. 그 중심에는 **그렐린(ghrelin)**이라는 호르몬이 있다. 그렐린은 공복 시에 위에서 분비되어 시상하부를 자극하고 식욕을 일으킨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공복 상태일 때 배고픔을 느끼고 식사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식사 후에도 그렐린 수치가 제대로 떨어지지 않거나, 그렐린의 수용체 민감도가 달라서 식사 이후에도 뇌가 계속해서 ‘배고프다’는 신호를 보내는 상태가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반응은 유전적인 영향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GHRL 유전자와 FTO 유전자다.
- GHRL 유전자의 변이는 그렐린 분비량 자체를 조절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식사를 한 이후에도 위장이 충분히 팽창했음에도 불구하고 GHRL 유전자의 특정 변이로 인해 그렐린 분비가 줄지 않는 경우,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해서 음식에 손이 가는 현상이 나타난다.
- 반면, **FTO 유전자(Fat mass and obesity-associated gene)**는 비만과의 상관성이 가장 뚜렷한 유전자 중 하나로, 식사 후 포만감 유지 시간이나 식욕을 조절하는 능력에 영향을 준다. 이 유전자에 특정 SNP(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단일염기다형성)가 있는 경우, 식사를 해도 금세 다시 배가 고프다고 느끼며, 평소보다 더 자주, 더 많이 먹게 된다.
또한, **HTR2C(세로토닌 수용체 유전자)**도 식욕과 관련된 중요한 유전자다. 세로토닌은 감정 안정과도 관련이 있지만, 식욕 조절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세로토닌과 관련된 유전자들이 식욕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어, ‘스트레스 먹방’이나 ‘위로 먹기’의 원인 중 하나로 간주된다.
이처럼 유전적으로 호르몬의 분비량, 수용체 민감도, 포만감 유지 능력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양을 먹더라도 사람마다 식사 후의 만족도나 다음 식사까지의 공복 지속 시간이 큰 차이를 보인다. 이를 모른 채 무작정 ‘덜 먹어야 해’, ‘조절해야 해’라는 강박에 시달리는 건 오히려 건강한 식습관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유전자 분석을 통해 본인의 식욕 관련 호르몬 반응 경향을 파악하는 것은, 보다 과학적이고 지속 가능한 식단 조절 전략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GHRL 변이가 있는 사람은 자주 소량씩 식사하는 방식으로 식욕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 폭을 줄이고, FTO 변이가 있는 경우 체내 인슐린 반응을 억제하는 저탄수화물 식단이나 저GI 식품 섭취를 권장한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고요?” – 유전자 검사의 의미
앞서 언급한 다양한 유전자들은 우리가 왜 과식을 하는지, 왜 남들보다 쉽게 배가 안 부른지, 혹은 왜 식단 조절이 어려운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최근에는 이런 유전적 정보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식단을 설계하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본인의 식욕 관련 유전자 변이를 확인하면, 단순히 ‘덜 먹자’는 접근이 아닌, 호르몬 균형을 잡고 뇌 신호를 조절하는 방향의 전략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MC4R 유전자 변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포만감을 느끼기 쉬운 고단백 식단, 혈당을 천천히 올리는 식사를 우선으로 구성하고, GHRL 유전자 영향이 있다면 식사 간격을 짧게 유지하며 소량씩 나눠먹는 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스트레스성 식욕을 유발하는 유전자 변이를 가진 사람은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을 병행하는 것도 매우 효과적이다.
마무리하며
과식은 단순히 ‘욕심’이나 ‘의지 부족’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유전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조절하고, 심지어 우리가 ‘배부르다’고 느끼는 뇌의 신호에도 관여한다. 그렇기에 본인의 식욕 조절 방식이 유독 다르다고 느낀다면, 그 원인을 ‘내 탓’으로 돌리기 전에 한 번쯤 유전자라는 깊은 층위에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과학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한 유전자 기반 맞춤형 건강관리의 필요성과 가능성이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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